현재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나날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풍경 속에는 유산군을 말해주는 역사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내해

헤쓰미야 신사와 내해

무나카타시를 흐르는 쓰리가와 강 중하류 유역과 후쿠쓰시에 펼쳐진 가쓰우라가타 갯벌(가쓰라가타)은 옛날에는 후미진 내해였습니다.여러 산에서 내려오는 지류들이 만나 현해탄으로 흘러가는 쓰리가와 강은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무나카타지역의 수원이었으며 사람들의 생활은 강의 흐름과 더불어 함께 있었습니다. 쓰리카와 강이 내해였다는 것은 "일본서기"에서 '海浜(헤쓰미야)'라고 쓰고 헤쓰미야 신사를 가리킨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세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에서는 바다와 강을 매개로 한 수많은 제례의식이 있었으며 최대 의식의 하나인 호조에의 '후나쿠라베 의식' 때는 가네사키ㆍ고노미나토ㆍ가쓰우라하마ㆍ쓰야자키 등 무나카타 어촌에서 헌상한 신선(神船)에 신이 깃든 가마를 태우고 쓰리카와 강에서 경주를 시켰습니다.

무나카타 지역의 내해 범위와 대형 고분의 분포
무나카타 지역의 내해 범위와 대형 고분의 분포

고분군과 내해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이 만들어진 무렵에 내해였던 가쓰우라 갯벌은 천혜의 항구로서 바다와 내륙을 잇는 교통 거점으로 지역을 지탱했습니다. 에도시대에 들어와 후쿠오카 번에 의해 해안선에 방풍림과 방사림으로써 소나무가 심어졌으며, 내해는 염전과 농지 개발을 위해 간척된 후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현재의 전원 풍경은 지역 농가들의 몇 대에 걸친 영농의 축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논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고분 역시 지역 주민들의 풀베기 같은 손질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임무를 다한 옛날 내해는 논으로 모습을 바꿨으나 망망대해처럼 펼쳐지는 전원 풍경은 이 땅에서 배가 오가던 지난날의 모습을 상기시켜 줍니다.
가쓰우라다케 나라비니 우미노나카미치
'가쓰우라다케 나라비니 우미노나카미치(勝浦嶽并海中道)'"지쿠젠노쿠니 쇼쿠후도키 부록(筑前国続風土記附録)"(1797) 개인 수장품
에도시대의 가쓰우라갯벌의 풍경. 해안의 모래사장은 솔밭이 이어지는 '바다 속의 길(海中道)'이라고 불리던 경승지로, 간척지에는 소금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외해로 이어진다.쓰야자키항에는 범선이 모인다. 구릉지에는 초가집의 농촌 취락과 더불어 '오쓰카''겐쓰카'라는 고분에서 유래된 지명이 보인다.

요배

 오키노시마 섬은 엄격한 금기로 인해 일반인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다를 사이에 둔 오시마 섬 북단에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가 만들어졌습니다. '요배(遥拝)'란 멀리서 배례하는 것을 말하며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는 섬 자체가 신인 오키노시마 섬을 향하여 배례하는 배례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The results of a GIS (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visibility range map centered on the summit of Okinoshima have been analyzed and compiled.

 에도시대에는 규슈 본토의 에구치하마 해변에도 오키쓰미야 신사와 나카쓰미야 신사의 요배소가 존재하여 후쿠오카 영주가 영지 내를 순시할 때 헤쓰미야 신사를 참배한 후 거기서 양 신사를 향하여 요배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멀리 떨어진 후쿠오카 조카마치(城下町) 내의 아라쓰야마 산(후쿠오카시 니시코엔)과 우오마치(후쿠오카시 아카사카 부근)에도 오키쓰미야 신사 요배소가 설치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무나카타지역의 사람들은 평소 생활 속에서도 해상 안전, 풍어기원, 오곡풍양, 가정평안 등 여러 염원을 담아 오키노시마를 요배했습니다. 옛날에는 '오키노시마 고모리'라고 하는 풍습이 있어 모내기가 끝난 여름 쯤에 취락 가까이 오키노시마 섬을 바라볼 수 있는 해변이나 산의 높은 곳에 머물며 제례주와 팥찰밥을 바치고 모내기가 무사히 끝난 것에 대한 감사와 무병무탈을 빌며 오키노시마 섬을 멀리서 배례했습니다. 무나카타지역의 사람들은 풍경에서 신의 기운을 느끼면서 오키노시마 섬과 무나카타 세 여신에 대한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신앙을 계승하는 풍경

바다의 '요세모노'

 '펼친 파라솔의 끝자락'으로 형용되는 자연 해안에는 해류와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많은 표류물이 표착됩니다. 표류물이 밀려오는 계절은 겨울. 대륙에서 불어오는 북서 계절풍으로 바다는 거세지고 구로시오 해류와 대마난류를 타고 흘러들어온 다양한 물건들이 해변 일대에 퍼집니다. 표류물은 다양한 역사를 말해줍니다. 현해탄은 파도가 거칠고 조류도 빨라서 항해의 난소로 유명합니다. 자고이래 무나카타의 바닷가에 난파선으로부터 떠내려온 짐들, 소위 '요세모노(밀려온 물건)'는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의 신물로 여겨져서 말사 신사의 수리비용에 충당되었습니다. 이는 그 시대의 조정이 정식으로 인정한 특권으로 이 해역은 무나카타타이샤 신사가 다스리는 신성한 영역이라고도 해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년에는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 발포스티롤과 같은 대량의 쓰레기도 흘러옵니다. 또한 소나무 재선충 등의 피해로 인해 솔밭이 두드러지게 황폐해졌습니다. 아름다운 해변을 미래에 남기고 싶다. 그러한 마음으로 해변 청소와 소나무 묘목 식수 등 자치회와 자원봉사 단체, 학교, 기업 들이 해변의 보전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백사청송이라고 부르기에 걸맞는 아름다운 해변은 이러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바다의 요세모노

'신의 고을' 무나카타

 '고사기' '일본서기'의 신화에서 무나카타 세 여신은 '무나카타지역에서 한반도로 향하는 해역을 지키는 신(海北道中道主貴)'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나카타지역(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ㆍ후쿠쓰시)은 옛날에는 무나카타군으로 불리었고 역사적으로는 일체적 지역이었습니다. 고대의 율령제도에서는 국가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신사가 있는 지역을 '신의 고을(神郡)'로 지정하였으며 무나카타군은 전국에서 8개 밖에 없는 신의 고을 중에 한 곳이었습니다. 무나카타지역에는 각 취락을 지키는 지역 신으로서 수많은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의 말사가 존재합니다. 중세에는 무나카타군 내에 75의 말사가 존재했습니다. 무나카타지역의 주민들은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와 취락의 신사(지역 신)의 두 곳의 신자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서, 경내 청소와 신사 제례 행사에 참가하는 등 평소의 생활 속에서 신사를 소중히 지키고 있습니다.

'신의 고을' 무나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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