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깃든 섬' 무나카타ㆍ오키노시마와 관련유산군은 천수백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무나카타지역에 살며 신앙을 키워온 사람들이 지켜 전해온 유산군입니다. 왜 유산군이 현재까지 계승되어온 것일까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금기

금기의 전통

 오키노시마는 섬 자체가 신입니다. 따라서 섬에는 엄중한 금기 사항이 있으며 이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엄격히 지키고 있습니다. 우선 오키노시마 섬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오이와즈사마(不言様)'라는 금기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오키노시마 섬의 존재가 그다지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고 현재까지 고대 모습 그대로 지켜져온 것입니다.게다가 알몸이 되어 바닷속에서 부정을 씻는 '미소기(禊)'를 하지 않으면 섬에 들어갈 수 없다, 섬에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라도 가지고 나가서는 안된다, 섬에서 네 발 달린 짐승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금기를 들 수 있습니다. 오키노시마 섬이 변함없이 꾸준히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기에 이러한 금기가 현재에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금기의 전통
미소기의 모습

오키노시마를 지켜온 어부들

오시마어항
오시마어항

 오시마 섬의 어부들에게 오키노시마는 예나 지금이나 황금 어장입니다. 그러나 파도가 높은 오키노시마 섬 주변에서의 조업은 위험도 많아 조업 시에 어떤 일정한 기준 같은 것을 어부들 사이에서 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키노시마 나카마(모임)라는 게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지요' 라며 말해 준 사람은 베테랑 어부, 우에노 요시미 씨. 오키노시마 나카마는 오시마어협에 소속된 어부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업 기술이나 선박 조종 기량은 물론이고 성품 등 다른 어부들로부터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면 그 자격은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오키노시마 나카마는 그 날 잡은 가장 큰 물고기를 신사에 봉납하는 등, 평상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습니다. 섬에 있는 것을 가지고 온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 바다에 떠 있는 나뭇가지조차 집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짓을 하면 "오이와즈사마"의 지벌을 받는다고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왔거든요'.오키노시마 나카마의 어부들은 오키노시마의 바다를 "신의 바다"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그 신성한 영역에서 신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이론과 상관없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시마의 어부들 덕분에 오키노시마 섬은 현재까지 지켜져온 것입니다.

여성들에게 있어 오키노시마는

오시마 어부의 아내들에게 있어 오시마 섬의 전통은 조금 복잡한 심정입니다. 남편은 고기 잡으러 섬으로 가지만 '오이와즈사마'라서 섬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안 하기 때문에 알 길이 없습니다. '보물이 많이 있다더라'라고 하는 소문은 있어도 남편에게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그렇다고 해서 전혀 상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예를 들어 초상 소식을 들어도, 남편이 오키노시마 일대의 조업에서 돌아올 때까지는 초상집도 장례식에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설령 가까운 친척 일이더라도 '남편이 오키노시마에 있다'고 말하면 바로 이해해 줍니다. 섬 밖에서 시집온 여성에게는 너무 독특해서 당황스러운 부분도 많다고 하지만, 이것이 어부 가정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관습입니다. 요즘 세상에 안 맞는다고 여겨도 자신이 안 지킴으로써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어부의 일은 죽음의 위기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신이시여, 살려주십시오"라고 빌었더니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경험을 가진 어부는 적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내들은 '역시 신은 내 남편을 지켜주고 계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오이와즈사마'를 지켜야겠다 싶어서 완고하게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을 계승하는 사람들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와 우지코

 '우지코(氏子)' 란 우지가미(氏神) 신이 진좌하는 땅에 살며 수호를 받으면서 그 신을 모시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우지코는 신에 대한 돈독한 신앙심으로 이루어진 깊은 유대관계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의 우지코에 관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937년 오키노시마 섬에 일본군의 포대를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되어 우지코 대표가 중지를 요구하는 상신서를 국가 앞으로 제출했습니다. 거기에는 '신의 영역을 군용으로 이용하려면 우선 신의 의사를 존중하시오. 그것이 국가 체제의 기본인 신에 대한 당연지사가 아닌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우지코 중의 한 명이 당시의 신관에게 '몸을 던져 오키노시마를 지켜라'라는 전보를 쳤고 이에 응하듯이 신관들도 진정서를 올렸습니다. 우지코 청년회는 오키쓰미야 신사의 청소활동을 비롯해 추계대제인 다카미야칸나비사이(高宮神奈備祭) 제례 등에 참여하고 있으며 축제를 주축으로 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우지코 청년회 전회장인 고바야시 씨는 말합니다. '지역의 자긍심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지켜온 것이 세계유산 등재라는 모습으로 집약되면 좋겠습니다'

축제

 옛날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의 2대 의식은 5월의 사쓰키에(五月会)와 8월의 호조에(放生会)였습니다. 호조에는 2차 세계대전 후 10월1일∼3일에 열리게 되어 지금은 추계대제(秋季大祭)라고 하는 무나카타타이샤 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특히, 추계대제의 시작을 알리는 '미아레 제례'에서는 오키쓰미야 신사의 다고리히메 신과 나카쓰미야 신사의 다기쓰히메 신의 신여를 모신 고자부네(御座船) 배가 오시마 섬에서부터 헤쓰미야 신사의 이치키시마히메 신이 기다리고 있는 고노미나토까지 바다를 행차하여 무나카타 세 여신이 일 년에 한 번 헤쓰미야 신사에 모입니다. 풍어기를 휘날리며 현해탄을 행진하는 어선단의 모습은 장관이며 해상교통의 안전을 관장한 무나카타 세 여신의 면모를 보여주는 웅장한 '바다'의 의식입니다. 아울러 신여를 모시는 고자부네 배와 그를 경호하는 구부센(供奉船) 배는 무나카타 7 항구의 어선으로 구성되어 무나카타지역 사람들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추계대제 마지막 날에는 무나카타 세 여신에게 축제가 무사히 거행된 것에 감사하여 다카미야제장에서 간나비사이(神奈備祭) 제례를 지냅니다. 그 날은 신비로운 의식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거립니다.

미아레 축제의 해상 행차
미아레 축제의 해상 행차

고분군과 지역의 생활

고분군을 후세에 전하다

 고분군과 그 주변 풍경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온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하나는 소문. 지역에서 '쓰카(塚:무덤)'이라고 불리는 고분군에는 '쓰카 가까이에 갔다가 한 달이나 고열에 시달린 사람이 있었다' '"쓰카바람" 을 쐬면 병 든다'등등. 이들은 정체 모를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선인들이 소중히 지켜온 공간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Shimbaru-Nuyama Mounded Tomb Group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 34∼39호분

또 한 가지 이유는 지역 사람들의 노력입니다. 누야마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쓰카가 있는 풍경을 아낌없이 사랑합니다. 저 산 위에서의 조망이 좋다든지, 석양이 질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든지, 각자가 자기만의 추천 '쓰카의 풍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나카타승마클럽의 마스다 미사코 씨는 후쿠마와 쓰야자키의 관광명소를 마차로 돌아보는 '쓰야자키 관광마차'를 기획했습니다. 마차의 느긋한 리듬과 고분의 풍경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이것도 역시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쓰카의 풍경이 될 것입니다.

고분군과 지역활동

매년 가을에는 고분군에 코스모스가 화려하게 핍니다.
매년 가을에는 고분군에 코스모스가 화려하게 핍니다.

 신바루ㆍ누야마 고분군이 축조된 5세기부터 에도시대에 이르기까지 고분이 있는 대지 주위에는 내해가 크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후 대부분이 농지나 염전으로 개척되어 현재 모습이 되었습니다. 고분군은 농지에 인접하여 사람들의 삶의 터전의 곁에서 소중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지역 사람들은 정기적인 풀베기로 고분의 모양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분군의 보전활동 뿐만 아니라 주위 유휴농지를 활용하여 코스모스를 심는 등 고분군을 즐길 수 있는 행사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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